참석인원 : 10명
텍스트 : 소수자와 차이의 정치/ 현민
**사회자의 13강 요약정리/ 참석자의 문제제기 및 소감으로 토론 시작.
정현(사회자) : 먼저 사회자로서 질문을 던지고 싶은 게 많다.
이 텍스트는 상당히 이상적이고 현실과의 괴리감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제3세계를 위해서는 인권운동도 중요하지만, 그들 눈앞에 닥친 아사를 막기 위해서는 식량이 중요한 것처럼, 소수자들을 위한 연대도 좋고 그룹 짓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인권 문제부터 고려하는 것이 진정 그들과 관련한 문제 해결의 시발점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텍스트 에서는 소수자들을 그룹 짓지 말라고 했는데, 이미 다수자들이 그룹 지어진 상태에서는 그들 또한 (다수자들 눈에는) 그룹 지어져 보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각자 돌아가며 텍스트를 읽고 느낀 점 한 마디씩 부탁한다.
희주 : 트렌스젠더는 그 자체를 여자로 보면 되는데 그들에게 섹시 아이콘을 특히나 더 바라는 점을 비판하고 싶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의 저자가 인권에 대해 너무 부정적인 개념으로 보고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준혁 :소수자라는 개념에는 상당히 상대적인 면이 존재한다. 각자 처하는 상황에 따라 우리는 누구나 소수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수자라는 말을 유동적인 개념으로 대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하나 : 우리가 이 텍스를 읽어내면서 세 가지 키워드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1번. 차이 2번. -되기(being이 아닌 becoming) 3번. 소수자이다. 앞에서 인권에 대한 언급이 있었지만 인권이 보장하는 것은 무엇일까. 일례로 2005년에 성매매 여성들과 여성부 간의 충돌을 생각해보자. 여성부는 인권의 이름으로 성매매 여성들을 보호하려 했지만 그들은 그 보호를 거부했다. 그것은 바로 소수자 간의 ‘차이’ 때문이다. 여성 또한 ‘여성되기’를 함으로써 비로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토론하면서 (준혁이 말대로) 사회적․정치적 영역에서의 소수자와 일상적인 영역에서의 소수자를 구분해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정현(사회자) : 어떤 차이까지를 소수자로 인정해야 하는가? 좀 극단적인 예지만 안양 초등생 살인사건의 정씨는 아동 성애자 이다. 그들의 비정상적인 성적 취향까지도 존중하자는 의견이 나올 수·있지 않을까. 동성애자의 문제와 그들의 성적 취향 존중 문제를 비교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종민 : 그건 정말로 좀 극단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다른 예로 포르노는 성적 행위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가학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아동 성애자의 경우 그 것은 대부분 가학적인 성격이기 때문에 존중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또한 동성애자의 문제와 비교대상으로 놓을 수도 없다.
성진 : 동성애자와의 차이를 존중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일반인에게 피해를 줄 가능성 또한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to 정민/ 앞에 생략됨)
정민 : 동성애자끼리 성관계를 하게 되면 성병이 생길 수 있고 설혹 복수심에서 그들이 아무에게나 옮긴다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한별 : 사실 이성애자들에 의해 성병을 일으키는 비율이 더 높다. 게이들이 성관계를 하면 에이즈 발생률이 높아진다는 명제는 잘못된 것이다. 작은 면을 너무 크게 해석한 것 같다.
본영 : 정민의 생각에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극악한 환경의 군대에서의 동성애자를 예로 들어 이성애자에게 이념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행위를 강요하는 경우도 생기지 않은가.
정현(사회자) : 그것은 ‘부분’의 문제로 취급해야 한다. 그렇게 따지면 이성애자끼리의 강간 문제가 더 비율이나 빈도가 높지 않은가. 항상 어떤 집단에는 비정상적인 일부가 있기 마련이다. 상식적인 면에서 덧붙이자면, 에이즈가 처음 생긴 원인은 이성애자들에 의해서다. 이성애자들이 원숭이를 수간함으로써 원숭이들만의 병이었던 에이즈가 인간에게로 옮아왔다. 이는 에볼라 바이러스도 마찬가지였다.
이 문제는 이쯤에서 정리하고 다음으로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소수자, 이주노동자의 문제에 대해 짚어보기로 하자.
본영 : 이민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사주들을 뉴스에서 본적이 있다. 백인들 사이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아버지가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와 같이 물리적․금전적 차별 대우를 받지는 않을지라도 맘이 편치 않다.
한별 : 이주노동자에 관한 다큐 등을 볼 때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필리핀 불법체류자가 여중생을 죽인 이번 사건을 볼 때, 그 원인은 다수자인 우리가 제공 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정현(사회자) : 일전에 중국인 여성이 한국에서의 삶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하고, 그 딸이 한국을 저주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불법체류자들은 왜 그런 억압적인 대우를 받으면서까지 한국에 남아있는가? 그들은 이미 체류부터가 범법이지 않은가.
성진 : 현실적 이유에서 이주노동자가 필요하다고 한다. 인력 수급 문제 등 문제가 많다. 나라 제도 등 쉽게 볼 문제는 아니다.
불법체류자라기 보다 초과체류자 라는 말이 더 옳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관광 비자가 아니라 노동비자를 줄 수도 있다. 근래엔 이주노동자들을 산업 연수생으로 받아들여서 2년 동안 고용하는 법을 정비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2년이 지나면 계약을 하게 되는데 2년 동안 일을 하며 버티기가 무척 힘들기 때문에 그 법의 현실적인 실효성에 관해 의견이 분분하다. 또한 브로커의 문제(소개비+교통비)가 있어서 들어올 때부터 빚을 지고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은 불합리한 처우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다시 귀향할 수 없는 문제 등 여러 다층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하나 : 외국인이라는 범주에서 이주 노동자는 또 소수자 안의 소수자의 모습이다. 요즘은 도처에서 처음 이주노동자의 문제가 대두되던 때의 사회상과는 또 다른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엿보이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우리가 공부하는 미디어가 그 역할을 십분 발휘한 탓도 있고. 물론 거기서 그들에게 강요되는 한국문화(ex. 김장, 청국장)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그제 일자 한겨레신문의 ‘차이를 경쟁력으로 활용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는 최근 ‘소수자 취업방안 마련’ ‘다양성 인식 멘토링’ 등의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는 기업에 관해 소개하고 있다. 성진선배가 말했듯 정부 차원의 제도의 정비 또한 변하고 있지만 경직된 기업 문화에서의 이러한 사고의 전환들이 있다. 그들은 이제 외국인노동자와의 ‘차이’를 다양성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경쟁력으로 이용하려 하고 있다. 물론 실천에는 여러 시행착오가 뒤따르는 법. *인터뷰 인용 “처음엔 대다수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는 싫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러나 다양성은 ’나와 다름‘, 즉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거지요. 소수만 존중하는 게 아니라 다수도 존중하는 겁니다.”
성진 : 이주노동자 센터 등에 가서 그들과 함께 교류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보호와 구제 목적으로 센터를 이용하기보다 다양한 문화의 경험을 교류하기 위해 센터를 이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정현(사회자) : 예를 들어 거리 공연을 하는 외국인 악사를 쉽게 볼 수 있는 것처럼 일상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접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이야기 나눴던 것처럼 제도 개선과 소수자들끼리의 연대가 주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럼 아까 언급되었던 내용과 이어서 소수자 내에서의 소수자 문제를 한 번 건드려 보자.
하나 : 페미니즘. 초기 페미니즘은 백인 여성들에 의해 점유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흑인, 동아시아 여성들은 그 초기 페미니즘 담론에서의 소수자다. 맨 처음 언급했듯이 같은 여성의 범주에서 여성부장관과 성매매 여성은 동질적인가.
정현(사회자) : 이전에 여성부 폐기논란이 있었을 때, 여성부는 상징적으로라도 꼭 필요한 존재라고 여겼다. 하지만 평소에 여성부는 어느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은, 사회생활이 가능한 여성들을 대표하는 집단인 것 같아 부정적인 생각을 어느 정도 갖고 있었다. 미혼모들이 오죽하면 여성부(현재의 여성복지부 이전)의 지원보다 보건 복지부의 기초생활수급자를 신청해야 금전적인 지원이 더 낫다고 말을 하겠는가. 여성부는 실질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여성들을 보호할 수 있는 집단인가.
준혁 : 세계에서 여성부가 존재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밖에 없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는 여성의 힘이 상당하고 수직 상승하고 있는 추세다. 그로 인해 역차별과 같은 부작용이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국사회가 조선시대부터 전통 깊은 유교 전통에, 뿌리 깊은 가부장제 사회라는 이유 등을 들어서 페미니스트 등의 사람들이 활개 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에서 한국만큼 여성들이 대접받는 곳도 없다고 생각한다.
하나 :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가 존재한다. 역차별 이라는 말 자체도 하나의 편견 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은 남성의 공간을 점거하고 지배하여 우위에 서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공존을 추구하는 것이다. 물론 초기의 페미니즘은 참정권운동에서 남성과 ‘같음’을 주장하는 것부터 시작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후 여성과 남성이 ‘차이’를 인지하고 기존의 남성학에 기생하여 명명된 페미니즘(맑스주의 페미니즘, 자유주의페미니즘.. 등)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페미니스트는 여자만 될 수 있는가? 아니다 남성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 페미니즘은 결코 여성과 남성의 분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모든 여성은 페미니스트인가. 진정한 여성되기를 하고 있는가의 논의까지 이어나갈 수 있겠다.
정현(사회자) : 군 가산점 문제를 화두로 제시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군 가산점제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불합리한 면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남성들의 심리적 보루의 역할이라도 필요하다고 본다.
하나 : 심정적인 지지는 한다. (웃음) 개인적으로 모병제 사회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국민은 국방의 의무를 가지고 있으며’라는 대한민국 법조항에서 알 수 있듯이 애초에 국가가 여성을 국민에 포함시키지 않았거나. 국방의 의무를 주지 않았거나이다. 이건 남/여의 대립구조(이것도 양성의 이분법논리)에서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해 볼 수 있는 논점이다.
정현(사회자) : 이어서 다음 시간엔 소수자의 문제와 나아가 대안의 문제까지 계속 이야기해보겠다. 프란츠 카프카 소설 <변신>또한 우리가 오늘 이야기한 키워드를 가지고 읽어오고 각자의 의견을 나눠보기로 하겠다. 그럼 다음 시간에 안뇽~














